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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오바고 언덕에서 바울의 음성을 듣다

복빵커 2025. 4. 19. 12:26

작년 11월, 나는 그리스 아테네를 여행했다. 유적지 중심의 일정이었지만, 마음속 가장 큰 기대는 단연코 아레오바고 언덕이었다. 바울이 복음을 전했던 그 자리에 내가 선다는 것. 단순한 여행 그 이상의 감동을 기대하고 있었다.

 
언덕 위 바위는 생각보다 소박하고 조용했다. 주변엔 고대 유적과 아크로폴리스가 병풍처럼 둘러져 있었고, 언덕 아래로는 아테네 시내가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바위 위, 고대 그리스어로 새겨진 사도행전 17장의 말씀. 바울이 아테네 사람들에게 전했던 그 복음의 핵심이 여전히 돌에 새겨져 있었다.

“너희가 알지 못하고 경배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사도행전 17:23)

그리스 철학과 신들이 가득했던 도시. 그런 곳에서 바울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라 말하며 창조주 하나님을 소개했다. 당시 아테네인들은 그를 어떤 눈으로 바라봤을까? 나는 그 자리에서 오래 서 있었다. 마치 수천 년 전의 바울의 음성이 돌 사이를 타고 다시 들려오는 듯했다.

경배의 대상은 누구인가

아레오바고를 거닐며 내가 가장 깊이 붙잡은 질문은 이것이었다. “나는 누구를 예배하고 있는가?” 일상의 분주함 속에서 내가 예배자로 살아가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실상은 내가 만든 우상들 앞에서 시간을 태우고 있진 않았는지 돌아보게 됐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이는 그가 만민에게 회개하라 명하셨음이라.” (행 17:30) 그 말씀은 여행자의 귀에도, 그리스도인의 양심에도 똑같이 깊게 울린다. 내게도 회개의 시간이 필요했고, 다시 복음을 붙드는 자리가 필요했다. 아레오바고는 단순한 장소가 아닌 내 신앙을 재정비하는 순간이었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언덕 입구에 설치된 안내판. 직접 걸어보게 될 고대 신전들의 위치와 이야기, 그리고 관람 예절까지 친절하게 담겨 있다.

신앙과 여행, 그 경계에서

그리스 여행 중 가장 인상 깊은 장소를 꼽으라면 단연 아레오바고다. 단지 성경의 현장을 밟았기 때문이 아니라, 내 믿음이 그 자리에서 한 번 더 흔들리고, 다시 바로 세워졌기 때문이다. 성경이 ‘지리’가 아니라 ‘현실’임을, 복음이 추억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있는 말씀이’란 걸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날 이후로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나는 종종 그 바위를 떠올린다. 사람들이 무심히 오르내리던 그 언덕 위에서 나는 예배의 본질을 배웠다. 사람의 시선, 철학, 체계 속에서도 복음은 울려 퍼져야 한다는 것을 바울은 보여주었다.
나는 지금도 그 돌판 위의 문장을 기억한다. 그 말씀이 내 마음에도 새겨져 오늘도 나를 예배자로, 복음의 사람으로 부르고 있다.
“복음은 장소가 아니라 생명이다. 그리스의 바람처럼, 오늘도 나를 통과하는 중이다.”